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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날 사랑하지만 좋아하진 않는 것 같아

영화 <레이디버드>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딸이 사사건건 부딪히는 엄마에게 하는 질문이다.

"Do you like me?" 엄마는 무슨 그런 질문이 있냐는 투로 "Of course I love you."라 답하지만, 딸은 굴하지 않고 다시 묻는다.

"I know...but do you like me?" 엄마는 대답을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말장난 같은 이 대사에 나는 모녀 관계의 핵심이 들어있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자식으로 맺게 된 인연은 인간 간의 '사랑'의 원형으로도 여겨질 만큼 고유하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은 혈연으로만 정해질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대사가 유난히 마음 속에 남았던 건 엄마에 대한 나의 불안함을 짚어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의 핵심에는 결국 나르시시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이 나와 유사한 구석이 단 하나도 없다면, 그의 존재와 나의 존재가 배타적이라면, 그의 존재가 그 자체로 나의 존재를 부정한다면, 아무리 인연이 깊어도 좋아하기는 어렵다. 

 

나는 우리 엄마를 사랑하지만, 과연 우리가 타인으로 만났다면 인연을 맺을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아마 엄마도 같은 마음일거라고. 엄마는 나를 딸로 낳아 키워주셨지만, 아마도 모녀의 인연이 아니라면 나와 가까워지기 어려웠을 거다. 근데 어떤 운명으로 우리는 모녀사이가 된걸까.  

 

오늘 치과에서 치료를 받고서 이런저런 얘기 중에 왜 나만 나머지 가족과 성향이 다르냐고, 내가 닮은 건 누구냐고 물었다. 이전에도 꺼낸 적이 있는 이야기라 새롭지는 않았지만, 그 때도 엄마는 답을 하지 않았기에 나에겐 해결되지 못한 의문으로 남아있다.

 

사실 나는 실제로 내가 누구를 닮았는지를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소외감을 해소할만한 무언가를 얻고 싶은 거다. 당장의 식구들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 거리감을 상쇄할 만큼 핵심적인 가족 구성원, 이를테면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어가신, 가족 안에서 사랑과 존경을 받는 외할아버지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다. 그래야만 나의 소외가 의미가 없어지기에. 

 

지난 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나는 거의 답을 강요했던 것 같다. 내가 외할아버지를 닮은 거냐고. 하지만 엄마는, 엄마에게 완벽한 아버지이자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남아있는 다정다감했던 아버지가 나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냥 내 질문에 애매하게 웃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그게 나에게는 '어딜 감히..'로 느껴졌다면 나의 자격지심이 너무 큰걸까. 

 

오늘은 그나마 답이 나오기는 했는데, 그것도 '00를 닮은 것 같다'는 식의 직설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겉보기에 아무도 닮은 것 같지 않은데 우리가 어린시절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또 하나의 가족, 할머니가 있다는 이야기로서 내가 할머니와 닮았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또는 엄마의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사실 이래서 닮았다라며 엄마가 조목조목 이야기했다면, 나는 그것을 건조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가 이야기한 방식에서, 외할아버지와 닮았냐는 질문을 회피한 모습에서 할머니 이야기를 꺼낸 것이 탐탁치 않았다. 엄마가 할머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지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외할아버지에 대한 감정과는 정반대이다. 할머니를 닮았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서 사실여부를 떠나 엄마와의 거리감을 확인했다면, 엄마에게서 '딸인 너를 사랑하지만 좋아하지는 않아'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면 이것또한 내 지나친 자격지심일까. 

 

생각해보면 나는 엄마가 나를 싫어한다고는 감히 생각하지 못했지만, 나에 대한 감정이 동생에 대한 감정보다는 복잡하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엄마 마음에 들기 위해서 더 애쓰고, 그렇지 않을 때 분노했던 것 같다. 내 안에서 폭풍같던 시간들을 보낸 후 나는 사랑하지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것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있나보다. 예전에는 그랬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으면 하기도 하고, 그냥 내가 예민한 거고, 엄마 마음 속 깊이 나에 대한 딸에 대한 사랑이 아닌 깊은 애정을 확인하고 싶었고, 여전히 그 마음이 남아있는 것 같다. 

 

엄마는 나의 어린시절을 회상하면서 내가 물욕이 많았다고 했다. 쿡. 

내가 정신없었고, 시끄러웠다고 했다. 쿡쿡.

동생의 새 장난감이나 학용품을 늘 꼬드겨 바꿔치기했다고 했다. 쿡쿡쿡.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놓고 좋아하지 않지 않아줘서 고맙다고 해야하나. 나는 늘 느끼고 있었는데.

언제쯤 서글프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티비에서 엄마가 자식에게 무조건적인 헌신과 사랑을 표현하는 게 어떤 건지 알겠는데 받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참. 새삼스레 서럽네.